미내사소식

지금여기 23-4호(통권135호 : 2018년 7/8...  2018.07.04
7월 통찰력 및 자기변형게임 진행 공지  2018.07.02
6월 통찰력 및 자기변형게임 진행 공지  2018.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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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좌문의 02-747-2261
  - 수강료 입금계좌
    농협 053-02-185431
            (예금주 이원규)


 

황석산성 전경(코스후 개인적으로 관광가능)

 


미내사 수련코스 소개

관련 기사


. 통찰력 게임 워크샵
. 생태심리학 자연에 말걸기
.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워크샵
. 청년 백일학교

1. 섬세한 배경의식
2. 자연을 통해 나의 내면을 알아차리다
3. 생각과 느낌의 경계
4. 청년 백일학교 학생과의 만남


. 미내사 홀로스 연구소 소개

1. 의식의 진화와 변형을 토대로

워크샵 묻고 답하기
1. 질문과 대답

 

1. 수련원에서 NLP 코스중 풍경 몇가지

 

 

 

 

. 코스장소 둘러보기

잔디밭 전경

수련원 전경

내부에서 바라보는 앞마당

농월정 전경

 

 

잔디밭 전경

코스장소 전경

거실에서 본 마당

산책코스 농월정

 

용추폭포 전경

앞마당 소나무 숲

거실내부

방 내부 

 

 

산책코스 용추폭포

마당앞 소나무 숲

거실 전경

방안 전경

 

. 주변환경 즐기기

계곡과 폭포, 정자가 가까이 있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덕유산 자락의 계곡에서 일상의 번사를 모두 잊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산책로와 용추폭포, 농월정, 거연정 그리고 맑은 계곡의 물은 태어난 자연그대로를 닮아 있습니다.
산책중에 발견되는 초목들은 그대로 약초들이며 몸을 보하는 산나물들입니다. 약초여행이 될 정도로 즐비한 자연식물들 속에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소나무 숲을 가르는 바람의 모습을 목조주택 거실의 넓은 창을 통하여 감상하세요!

봄과가을: 계곡에 발담그기, 산책, 정자 거닐기, 폭포 구경. 

여름: 어름덩굴 구경하기, 어름 따기, 용추폭포, 산책, 농월정, 거연정 거닐기

겨울: 눈쌓인 산책로 거닐기, 하얗게 언 계곡 감상..

 

주변관광지(코스후 시간 나시면 들러보실 수 있는 곳들입니다)


 

황석산

황석산은 거창 남녘에 솟은 범상치 않은 바위산이다. 백두대간 줄기에서 뻗어 내린 네 개의 산 기백·금원·거망·황석 가운데 가장 끝 자락에 흡사 비수처럼 솟구친 이 봉우리는 덕유산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가을철에는 거망에서 황석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광활한 억새밭이 장관이다. 황석산성은 함양땅 "안의" 사람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이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음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천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지금껏 황석산 북쪽 바위 벼랑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농월정

안의 화림동 여덟 개의 못과 여덟 개의 정자가 유명하다.특히 농월정, 동호정 거연정, 군자정 등은 전라도 못지 않은 이 지방 정자 문화를 대표한다.안의 삼동 중에서 화려한 자연의 미를 간직한 곳이 화림동이다. 화림동은 안의에서 전북 장수군으로 통하는 구도 26호선을 따라 약 4㎞를 가면 굽이치는 물가에 아담한 마을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곳이 화림동의 정수 농월정이 있는 곳이다. 화림동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금원이 굽이치며 흘러 팔담팔정을 이루었다. 그래서 예부터 화림동을 정자문화의 보고라 한다. 지금도 농월정을 비롯한 4개의 고풍스런 정자가 남아 있다. 특히 농월정은 달을 희롱하며 논다는 옛날 우리 선조들의 풍류사상이 깃든 곳이다. 많은 시인묵객들이 거쳐간 곳이다. 맑은 물이 급한 굴곡을 이루는 곳에 커다란 반석이 펼쳐져 있다. 반석 위를 흐르는 물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면, 농월정 이름 그대로 달을 희롱하는 듯하다.

 

 

용추폭포

서해안의 해돋이 명소입니다.일출과 일몰은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해안이 동쪽을 향해 툭 튀어 나와있는데, 수평선 방향이 동쪽이고 바다
너머 육지가 멀다보니 일출과 일몰이 모두 보입니다.
석문산(79m)의 정상에 오르면 일출과 월출을 볼 수 있고, 당진군 석문면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사이의 비경도를 중심으로 일몰이 이루어집니다.

 

 

덕유산 관광지

리나라 남부의 영·호남지방을 가름하고 있는 대표적인 산으로 북쪽으로 금강, 동쪽으로 낙동강의 물뿌리가 되고 있으며 해발 1,614m의 향적봉과 해발 1,507m의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30㎞ 중선과 90리를 맴돌며 구비친 구천동계곡의 33경은 이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고 있다. 능선에 오르면 동쪽으로 가야산, 서쪽으로 내장산, 운장산, 남쪽으로 지리산의 능선, 북쪽으로 계룡산, 속리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600여종의 동물과 250여종의 식물군 이 분포하여 사계절 자연의 오묘함을 연출하며, 대단위 학습원과 수련장이 있다. 

소백산맥에서 남쪽으로 뻗어나온 덕유산국립공원(219㎢)은 전북, 경남의 2도 4군에 걸쳐 있으며, 1975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유산하면 모두 무주를 연상하고 있으나 백두대간이 되는 주능선에서 북쪽으로 1.6Km 벗어나 있는 최상봉 향적봉(1,614m)을 제외한 덕유 연봉들이 모두 거창군내에 위치하고 있다. 덕유산이 시작되는 덕유삼봉산(1,254m)에서 부터 수령봉(933m),대봉(1,300m), 지봉(1,302m), 거봉(1,390m), 덕유평전, 무룡산(1,492m), 삿갓봉(1,400m), 남덕유산(1,508m)등이 거창의 산이다. 거창군 북상면 월성계곡의 아름다운 물과 바위, 무주의 구천동계곡에 버금가는 산수리의 마학동 계곡, 병곡리의 상여덤계곡, 소정리의 송계사 계곡 등은 곳곳에 소, 담, 폭을 이루며 아직도 깊숙한 골짜기에는 속살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황석산성

함양군 안의면과 서하면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1,190m의 황석산 정상에서 좌우로 뻗는 능선을 따라 하나의 계곡을 감싸면서 형성된 포곡식 산성이다.
  성의 위치가 영호남의 관문으로 전라도의 장수, 진안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는 점과 구조로 보아 신라가 가야를 멸망시키고 백제와 대결하게 된 시기에 축조되었을 것이라 추측되는 성으로 성곽의 총 연장은 2.75Km이다.
  "동국여지승람" 안음현(安陰縣: 지금의 안의면) 성곽조에 따르면 둘레가 29,240척이고 성 안에는 시내와 군창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현재 성 가운데로 계곡이 있어 물이 마르지 않고 있다.
  조선태종 10년(1410)에 경상도의 6개의 성을 수축할 때 화왕산성, 조혜산성, 금조산성, 염 산성, 부 산성과 함께 수축한 기록이 있고 성내의 넓이는 34결 이나 되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인 선조 30년(1597) 8월에 이르러 체찰사 이원익이 수축과 수성의 명을 받고 안음, 거창, 함양의 3읍 주민을 동원하여 성을 보수 한 바 있으나 격전으로 함락된 곳이기도 하다.
  역시 정유재란 때인 선조 30년(1597) 前 함양군수 조종도와 안의현감 곽준 등이 왜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그 해 8월에 함락되어 500여명이 순국한 곳이다.
  성은 돌로 쌓은 부분과 흙으로 쌓은 부분이 섞여 있는데 석축 부분은 자연암반이 노출된 산 위이며, 토석 혼축부분은 일반 능선부분이다. 성문은 동, 서, 남, 북동쪽에 나무로 문루(門樓)를 갖춘 작은 것이 배치되었고 성안 동쪽에 흐르는 계곡 주변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동의 건물지가 보이고 있는데 규모나 위치로 보아 성안의 중심 건물로 추측된다. 축조 수법은 산탁(山托)과 협축(夾築)을 겸하고 있는데 기단부는 산탁 또는 내탁 수법을 쓰고, 윗부분은 협축한 것이 보통이다. 이 산성은 1991년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황석산을 찾는 등산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논개 유적지

의암 주논개는 1593년 임진왜란 이라는 국난의 시기에 나라를 구하려고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던져 열아홉 꽃다운 젊음을 나라에 바침으로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한국 여인의 얼을 대변해주는 역사의 귀감이 된 정신적 지주로 이에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고자 1965년부터 논개추모제를 거행한 것이 유래가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성과 문화·예술성을 겸한 전국적인 행사로 발전하게 되었다.

1574년 9월 3일(갑술년, 갑술월, 갑술시)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출생.
부친은 주달문이고 모친은 밀양박씨로 학덕이 높은 집안임.
어릴때 부친 별세. 편모슬하에서 자람.
숙부 주달무가 김풍헌의 며느리로 팔려고 하자 모녀의 친정인 경상남도 안의현으로 피신. 김풍헌의 고소로 재판을 받게 되어 무죄방면 되었 으나 갈곳이 없는 논개모녀를 관아에 머물게 하였음.
부인이 사망하자 1591년(선조 24년) 최현감의 후실로 들어감.
1592년(선조 25년) 4월 13일 임진왜란 반발.
최현감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제수 받자 논개님이 진주성으로 따라감.
1593년 6월29일 진주성 함락. 최경회 장군 남강에 투신 순국
동년 7월7일 촉석루에서 왜군 승전연에 기생으로 가장 연회에 참석, 왜장 게야무라 로꾸스께(毛谷村六助)를 유인 남강에 투신 순절